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비판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2007-09년 금융위기 논쟁 비판
작성완료: 18.09.08
서론
-2007-09년 금융위기는 경제위기 원인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의 현실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계기. 여기서는 위기의 원인, 정책대응과 향후전망, 대응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둘러싼 논쟁을 비판적으로 검토.
금융위기의 원인
-2007-09년 금융위기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자본생산성 하락에 따른 이윤율 하락이 구조적 원인, 2000년대 주택시장거품 붕괴가 정세적 원인이며, 이 두 원인은 1990년대 이후 본격적 금융세계화에 의해 매개됨.
과소소비와 이윤율 하락
-과소소비론은 생산의 무제한성과 소비의 제한성을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 보며, 이는 식민지 같은 비자본주의적 출구를 필요로 한다고 봄. 오세철은 전후 자본주의는 부채경제를 통해 생존해왔으며, 이번 위기는 자본주의가 2000년대에 파국에 직면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주장. 채만수는 자본주의에서 ‘과힉기술혁명’ 같은 생산력 발전이 실업과 빈곤을 통해 과소소비를 야기하며, 이번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실물경제위기라고 주장. 이와 같은 과소소비론은 항상적 과소소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경우 1950~60년대 미국 자본주의 성장기를 설명할 수 없음. 또, 이 논의는 실물경제적 원인에 대한 분석과 금융적 원인에 대한 분석을 각각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즈주의로 대립시키며, 오히려 좌파가 금융에 대한 케인즈주의적 관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함.
-김성구는 과소소비를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순환적 위기의 원인으로 규정함. 따라서 이번 위기 또한 주택부문의 과잉생산에 따른 순환적 위기에 불과하며, 결국 새로운 경기순환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 다만 금융시장이 주도하는 ‘위기의 축적체계’로서 신자유주의에 고유한 ‘위기 메커니즘’으로 인해 실물경제위기와 금융위기가 중층적으로 결합된다고 주장. 그러나 신용위기로 그치지 않은 이번 위기를 볼 때 순환위기로 보긴 어려움. 또, 신자유주의에 구조적 위기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번 위기가 순환적 위기라고 주장하는 등 주장의 일관성이 없음.
-이윤율 하락을 구조적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논자는 정성진. 그러나 그는 이윤율 하락에 대해 상충되는 이론을 절충하여 설명하며, 이번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애초의 장기불황에서 기인한다고 주장. 장시복은 미국 자본주의의 이윤율에 대한 실증적 분석과 주기적 과잉생산론에 기초한 순환적 위기론을 절충. 1970년대 미국경제의 이윤율 하락 추세는 ‘정형화된 사실’. 그러나 이윤율 하락을 구조적 위기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논의는 여러 이론을 절충하거나(정성진), 분명한 이론적 설명을 제시하지 않음(장시복). 또, 이윤율 하락에 대한 통계적 묘사만 제시하면서 1980년대 이후 이윤율의 상대적 상승에 대한 설명이 아주 혼란스러움. 영구군비경제(정성진)나 실질임금 하락(장시복) 같은 상황논리가 분석을 대체할 뿐.
금융세계화와 달러본위제
-진보주의자들은 일부 금융과 산업의 관계 변화를 지적하는 논자들도 있지만, 대체로 금융화를 금융투기에 의한 거품경제의 형성과 동일시. 그러나 이 경우 금융화의 경제적 메커니즘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고, 도덕적 비판에 매몰됨. 한편, 금융화가 ‘신보수주의적 반혁명’ 같은 정치적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고,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경제적 조건과 무관하게 선택할 수 있는 정치이데올로기로 간주하기도 함. 그러나 정책노선의 변화는 단순히 정치적 보수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님. 또, 이들은 케인즈주의와 ‘국가주의’,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부당하게 동일시하여 신자유주의 하 정책개혁의 구체적 형태와 그 내재적 모순을 분석하지 못함.
-마르크스주의 진영에서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위기론은 이윤율 하락과 구조적 위기에만 주목할 뿐, 구조적 위기와 순환적 위기의 결합, 나아가 금융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 반면 곽노완은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위기론의 변형․확장을 주장하면서 산업자본을 절대화하는 ‘오류’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구함. 그는 산업의 이윤율 하락을 통해 금융화를 설명하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 이윤율의 하락은 오히려 금융위기의 결과라고 주장함. 그에 의해 재구성된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위기론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축적은 투기의 대상과 주체를 계속 확장하며, 금융위기는 투기, 즉 ‘시세차익을 획득하기 위한 투자’의 결과. 따라서 이번 위기는 투기시장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자본주의의 경향의 일부라는 것. 그러나 곽노완의 주장에는 수많은 이론적 문제가 있음. 그는 마르크스가 산업자본을 상업․금융자본과 구별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며, 자본주의적 축적의 보편적 법칙을 금융투기의 확대․심화로 간주하면서 모든 위기를 금융위기로 환원함. 이는 결국 금융의 내재적․투기적 불안정성을 강조하는 민스키의 이론으로 귀결됨.
-백승욱은 현재의 금융위기는 1980년대 이후 이윤율 반등을 가져온 금융화 모순의 폭발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1930년대 대불황과의 차이를 강조하며, 금융화를 헤게모니 이행이라는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 그러나 정성진의 한계가 금융위기의 정세적 원인을 무시하고 구조적 원인으로 환원하는 것이라면, 백승욱은 실물경제의 이윤율 하락을 위기의 궁극적 원인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도 비판. 이는 금융화의 경제적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하는 아리기의 한계에서 기인함. 금융화는 헤게모니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에서 기인하지 않으며, 미국경제의 이중적자와 수출달러환류는 단순한 ‘제국의 공납’이 아님.
-달러본위제와 관련 김정주는 미국경제가 달러의 ‘가공적 가치’에 기초하여 ‘허구적 성장’을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곽노완은 ‘달러지배체제’를 ‘약소국에 대한 수탈 메커니즘’으로 규정함.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관리통화제에서 달러를 포함한 중앙은행권이 더 이상 보편적 등가물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화폐의 본질에 대해 심각히 오해하고 있음. 브레튼우즈체제 붕괴 이후 40년 가까이 지속된 달러본위제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아무 과학적 의미가 없음.
-장시복은 이윤율의 운동, 금융화, 이중적자를 모두 고려하면서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을 시도. 그는 금융위기의 원인을 1990년대 미국경제의 대내외적 불균형에서 발견함. 1990년대 미국경제는 제조업부문 이윤율 상승에도 불구하고 경제호황은 정보통신산업에 국한되는데, 이는 주식시장의 붐에 의한 것으로 상위계층을 중심으로 자본소득에 기초한 소비가 증가하면서 경제호황을 뒷받침한다는 것. 주식시장 발전 과정에서 ‘금융활극’이 시작되고 금융적 불안정성이 심화됨. 또, 이 같은 대내적 불균형은 대외적 불균형을 야기했다고 설명. 그러나 그는 구조적 위기에 대한 관점 없이 이윤율의 단기적 변동을 통해 순환적 위기만 설명하며, 실물경제 이윤율에만 주목함. 또, 1990년대와 2000년대 금융화의 차이를 분석하지 못하기에 이중적자에 주목하면서도 이를 증권시장을 지지하는 한 가지 요인으로만 간주함. 2000년대 금융화는 새로운 금융혁신에 기초한 것으로 1990년대 신경제거품의 단순한 연장으로 간주할 수 없으며, 2001년 위기의 지연으로 볼 수도 없음.
금융혁신과 신용의 증권화
-이번 금융위기의 원인을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그릇된 정책(장상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약탈적 성격’(이종권)으로 규정하는 논자들은 일련의 금융혁신에 주목하기보다 단지 촉발요인이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화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음. 한편, ‘증권화’에 주목하며 윤리적․제도적 허점에 주목(전창환), ‘증권화 과정에서의 시장규율의 부재’(이종권), 금융규제․감독의 완화에 따른 금융제도의 변화를 강조(장상화) 등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존재함. 이는 증권화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분석에 중요한 이론적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인데, 케인즈주의적 입장에서 증권화는 순기능과 역기능을 모두 포함하기 때문. 여기서 증권화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제․감독의 부재, 미국 주택시장의 특수성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
-마르크스주의적 접근에서는 증권화를 두 가지 방식으로 비판함. 하나는 파생금융상품을 전적으로 금융투기(김성구)나 금융사기(이채언)로 간주하는 것.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가공자본 개념에 기초하여 파생금융상품을 비판하는 것(곽노완, 김정주). 그러나 이들도 가공자본을 신용과 구별되는 금융자본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본의 가공성․허구성만 강조함. 곽노완은 가공자본의 가격방정식을 통해 주택담보부증권의 가격하락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제시한 방정식은 주택담보부증권의 가격을 하락시키는 측면만 선택적으로 취합한 것으로 부적합함.
정책대응과 향후전망
-대부분의 논자들은 금융위기 초기의 정책대응, 즉 재무부의 구제금융과 연준의 가격완화정책에 대해서만 논의하여 또 다른 핵심정책인 연준의 수량완화정책의 모순을 분석하지는 못함. 또, 현재 금융위기가 해결된 것인지 아닌지조차 판단 못하므로 더블딥의 가능성도 간과함.
-케인즈주의적 분석은 모든 경제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환원하기에 현재 위기도 침체 이후 회복될 것으로 전망. 따라서 케인즈주의가 부활할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오바마 당선이 이를 상징한다고 주장함. 그러나 이들은 새케인즈주의자가 주도하는 오바마 정부의 성격을 오해하며, 이번 정책대응에서 겸업화와 인수․합병이라는 기조가 유지된 사실은 간과함. 나아가 이들은 금융을 억압하면 실물경제가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가정하는데, 이는 현재 기업이 금융그룹으로 변모한 사실을 간과하는 것. 현재 금융시장을 강력하게 규제하면 금융과 산업이 동시에 몰락할 수도 있음.
-마르크스주의에서 구좌파는 모두 이번 위기를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로 간주함. 그래서 어떤 정책대응도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정책대응 분석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 자본주의가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추상적’이고 ‘당위적’인 이유를 열거하면서 자본주의의 지속불가능성을 강변할 따름. 반면 정성진과 김성구는 이 양극단 사이에서 동요. 김성구는 신자유주의 위기 메커니즘이 지속할 거라 주장하면서도 자본주의 붕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함. 정성진은 현재 상황이 1930년대 대불황보다 심각하다고 하면서도 케인즈주의 정책체제 하 위기가 봉합될 수 있다고 주장함.
-백승욱은 거시경제정책으로 위기가 관리되고 있기에 얼마간 회복될 수 있다고 전망하나, 이는 정책대응의 내재적 한계를 분석하는 주장은 아님. 달러체제 해체, 달러지배체제 붕괴(김정주, 곽노완)을 예상하는 논자들의 주장은 달러본위제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붕괴한다는 주장이기에 공허할 뿐. 반면 장시복은 정책대응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며 은행위기 저지에는 성공했으나, ‘이익의 사유화와 손실의 사회화’, 수량완화정책의 한계가 나타났다고 지적함. 그러나 그는 수량완화정책의 특징을 간과하여 은행위기가 해결되었다고 오판하고 더블딥 가능성을 무시함. 같은 맥락에서 국내에서 재정위기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고, 향후 재정정책 사용 여지 축소만 일방적으로 강조할 뿐.
좌파적 대안
케인즈주의
-케인즈주의적 입장에서 위기는 순환적 위기에 불과하므로 경제정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으며, 오히려 이번 위기는 ‘과감한 개혁’의 기회로 인식됨. 이 개혁은 금융억압(‘금리생활자의 안락사’)과 적자재정(‘투자의 사회화’)로 구성됨. 그러나 금융억압의 구체적 수준과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금융억압의 국내적․국제적 수단을 입법과 집행의 ‘정치적 의지’에서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음. 한편, 금융억압만으로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에 재정정책을 강조함.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 적극적 재정지출을 통한 고용 창출과 사회보장 강화를 제시함.
-케인즈주의적 입장은 영․미식 자본주의를 개혁하자는 진보주의적 이념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나, 이들의 가정과 달리 금융억압은 고유한 구조적 조건을 전제로 하기에 정치적 의지로 실행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님. 이윤율 하락 국면에서 금융억압으로 새로운 경제성장이 출현할 수는 없기에 케인즈주의로 복귀하자는 주장은 시대착오적. 적자재정 또한 마찬가지로, 기술혁신이 부재하는 한 임금인상과 재정적자에 기초한 수요 증가는 단기적 효과만 가질 뿐. 비생산적 정부지출은 장기적으로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재정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 ‘정치적으로 올바를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오류.
비교자본주의론
-비교자본주의론은 이번 위기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가 아니라 ‘영․미식 금융자본주의’의 위기로 인식하며, 국가가 케인즈주의적 정책보다 더 강력하고 직접적으로 시장을 조정하는 ‘조정된 시장경제’를 옹호. 이에 이들은 1960~70년대 동아시아, 특히 남한의 발전국가(장하준)과 같은 국가주도의 성장정책이나, 동아시아 지역통합(최태욱)과 같은 지역적 경제협력을 제안함.
-그러나 이 같은 제안들은 자본주의의 지배적 형태와 종속적 형태를 구별하지 않는 것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발전이 미국의 성장에 의존하는 추월전략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함. 1970년대 동아시아 ‘발전국가’는 미국의 ‘역개방정책’에 의존한 것. 또, 이들이 전제하는 중국의 경제기적은 중계무역에 기초한 것이며, 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에는 미국․일본의 초민족기업이 중국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음. 한편,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주요20개국은 미국 쇠퇴가 아니라 미국의 헤게모니를 다자주의적 방식으로 실현하는 새로운 ‘세계적 통치성’일 뿐.
국유화론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적 해결의 불가능성을 강조하며 전위전당의 건설(사노준, 오세철, 정성진)과 국유화 또는 ‘사회화’ 노선(박성인, 김성구)을 제시함. 은행의 사회화(김성구), 은행의 국유화(장상환)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국유화된 은행이 이윤이 아닌 ‘국민경제의 재생산을 관리하는 계획기구’의 일부가 될 것이라 주장하며, 금융기관 뿐 아니라 주요 기업에 대한 ‘사회화’와 ‘노동자․민중의 통제’를 옹호하기도 함(박성인). 한편, 국가에 의한 몰수로서 국유화를 사회주의적 대안으로 옹호하고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전위정당을 건설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자고 주장하는 논자들도 존재(양효식, 오세철). 그러나 이들은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어떤 비판적 평가도 제시하지 않음. 정성진은 스탈린 관료주의를 비판하면서 중앙집권적 계획에 기초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기각하는 ‘참여계획경제’를 제안하기도 함. 그의 논의는 계획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계급투쟁의 핵심 쟁점인 소유 문제는 다양한 소유형태를 절충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처리함.
-이러한 논의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사회화와 국유화에 대한 개념적 혼란이 발견됨.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노동자연합에 의한 ‘소유의 사회화’를 공산주의의 경제적 토대로 제시했으며, 여기서 사회화는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이행강령으로 제시된 국유화와 구별됨. 한편 부르주아적 국유화는 적자재정을 의미하는 케인즈적 ‘투자의 사회화’와 아무런 관계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유화를 사회주의의 핵심 내용으로 제시하면서도 대부분 부르주아적 국유화를 대안으로 채택하고 이를 ‘사회화’라고 지칭함. 반면, 프롤레타리아적 국유화를 주장하는 논자들은 그것의 역사적 한계에 대해 반성하지 않음. 전위정당을 원칙적 조직으로 격상하고 노동자운동을 도구주의적으로 사고하기 때문.
-금융위기의 결과로 제국주의 사이의 경쟁과 제3세계에 대한 수탈 격화를 예상하고 ‘반제국주의 계급투쟁’(김명호)을 주장하거나, 사회주의로의 변혁을 제국주의 타파․후퇴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김승호)하는 논자들도 존재. 그러나 민족해방의 관점에서 제기되는 반제투쟁은 세계경제로부터의 분리와 고립을 의미할 수 있으며, 평화주의라는 쟁점을 모호하게 만듦. 노동자 국제주의에 대한 당위적 호소가 아닌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 설명해야 함.
기본소득론
-기본소득론은 벨기에의 ‘분석마르크스주의자’ 반 파레이스가 제안한 것으로, 소유형태와 생산관계를 문제삼지 않는 대신 분배방식을 변형시킴으로써 더 높은 수준의 생산성과 자본축적을 유지하면서도 ‘더 평등한 자본주의’를 달성하고 공산주의를 ‘예비’할 수 있다고 주장함. 국내에서는 이를 급진화하여 이행전략으로 변형,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옹호하고 평등한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로 이행을 주장하는 논자들이 등장함. 곽노완은 불로소득․투기소득에 대한 과세, 세계단일화폐 도입으로 일부를 세계적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 은행 국유화 후 ‘사회연대기금’을 통한 모든 기업과 주식 매입을 제안함. 강남훈은 기본소득론과 고유한 ‘연대사회론’을 결합하여 기본소득 같은 복지의 확대로 사회주의에 대한 국민적 합의 형성의 출발점을 만들자고 제안함. 더불어 개헌을 통해 소유형태를 변화시켜 ‘사회적 소유’를 확립하자고 주장.
-기본소득론이 제시하는 대안사회는 실행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탈노동의 유토피아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이 이념과 대립됨.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무상소득이라는 포스트모던한 이념은 노동자의 자기소유로서 노동권과 양립할 수 없음. 또, 조세․복지의 확대로 공산주의를 예비한다는 구상은 자본축적의 감속과 재정위기의 위험을 고려하지 않음. 더불어 그 이행전략은 특히 대안사회의 소유 문제를 생산관계가 아니라 법의 문제로 간주하는 결함이 있음. 대안적 생산관계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국가지주회사’의 설립 혹은 사회적 소유라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소유의 사회화가 실현될 수는 없음. 더 나아가 기본소득론은 실천적으로 노동자운동을 상대화함.
정세적 대안
-케인즈주의는 금융억압, 임금인상, 총고용보장이라는 이념적 대안이 곧바로 정세적 대안으로 이어지며, 남한에서는 ‘사회공공성’이라는 관념과 결합됨. ‘사회공공성’ 강화를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은 결국 실질임금과 복지수준의 하락을 방지하고 노동자의 구매력을 통해 내수를 진작시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가정함. 사회공공성은 금융공공성으로 확장되어 금융을 ‘공공재’로 규정하고 금융에 대한 통제를 주장함. 앞서 언급했듯 이러한 주장은 단기적 처방에 불과하고 장기적으로 재정위기의 위험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금융공공성’에 관련된 주장 또한 금융억압 메커니즘에 대한 오해에 기초하고 있어 실행가능성이 없음. 오히려 실행가능한 정세적 대안은 중앙은행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
-구좌파적 마르크스주의는 케인즈주의적 정책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부적합성을 비판하지 못하고 원칙적으로 기각함. 이들의 대안은 이념적 입장에 머무를 뿐이며, 이 한계는 또한 이념적 대안과 정세적 대안의 괴리로 귀결됨.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는 고용보장, 노동시간단축, 생존권쟁취 등을 현실적 투쟁목표로 제시하면서도 이것이 어떻게 ‘사회주의 건설’로 이어지는지 설명하지 못함. 그런데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불황기 자본주의 하에서는 최소강령이 곧 최대강령일 수 있다는 트로츠키 주장을 논거로 이 같은 괴리를 오히려 정당화함. 그러나 불황기 생존권 투쟁이 반자본주의 투쟁이나 권력쟁취 투쟁으로 발전한다는 주장은 1930년대 그 요구가 케인즈주의로 포섭되면서 이미 오류로 판명남. 『공산주의자 선언』의 이행강령은 최소강령과 최대강령을 매개하는 정세적 요구를 의미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민생지원’ 또는 ‘서민 살리기 긴급대책’과 금융규제 강화를 정세적 대안으로 제시함. 그러나 사회보장을 확대하자는 주장은 경제적 실행가능성이 없음. 진보정당들은 이번 위기를 단순히 금융투기의 결과로 파악하면서 케인즈주의적 대안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데, 그것이 ‘반이명박 전선’을 부각시키려는 정세적 선택의 결과인지 이념적 혼란의 결과인지는 불분명함. 이 같은 측면에서는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로, 총고용보장과 사회안전망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대안을 주장함. 그러나 총고용보장에 포함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강도를 상승시키기 때문에 그것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지 않으면 사실상 임금을 하락시킴. 게다가 노동강도의 상승에 비례해서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은 고용창출 효과가 없는데, 1990년대 후반 유럽에서 노동시간 단축으로 변형근로제만 확대시킨 선례에 주목해야 함. 한편,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에 의존하는 요구는 노동자계급의 단결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국가에 대한 의존을 강화시킬 수 있음.
결론
-중도좌파 성향 논자들은 대체로 케인즈주의적 입장에서 금융위기의 원인을 거품경제에서 발견하며, 금융규제와 수요 진작으로 경기회복이 가능하다고 전망함. 그러나 이 같은 입장은 이윤율 하락에 따른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간과하는 것.
-급진좌파 성향 논자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하여 경제위기의 구조적 측면에 주목하나, 구조적 위기만 강조하면서 구체적 정세를 분석하지 못하고 도덕적 비난만 할 뿐. 이 같은 이론적 무능력으로 이들은 대안을 제시할 때도 추상적 이념만 남발하고 정세에 적합한 구체적 대안을 사고하지 못함. 게다가 그 이념적 대안도 이미 현실 사회주의의 경험을 통해 실패한 것으로 입증된 전위정당의 국유화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반복하는 것. 이러한 무능력은 결국 좌파 진영이 케인즈주의적 정책처방을 무비판적으로 추수하는 것으로 귀결됨.
문헌해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