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현대경제학

1강: 현대경제학의 역사

이무민* 2020. 2. 2. 01:07

현대경제학 비판

 

1: 현대경제학의 역사

 

작성완료: 20.02.02.

 

새뮤얼슨과 현대경제학

 

-새뮤얼슨은 현대경제학(modern economics)신고전파 종합’(neo-classical synthesis)으로 특징지음. 첫 번째 의미는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과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을 종합한다는 것. 두 번째 의미는 거시경제학 내부에서 경기순환론과 경제성장론을 종합한다는 것. 새뮤얼슨은 현대경제학의 본질이 거시경제학에 있으며, 거시경제학 내부에서는 경기순환론이 핵심이라고 주장함.

-새뮤얼슨 교과서(경제학)의 특징은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에 대한 설명에 있음. 새뮤얼슨은 케인즈의 총공급-총수요모형을 자신의 소득-지출모형으로 변형함. 더불어 고용을 독립변수로 설정한 케인즈와 달리 새뮤얼슨은 국민소득을 독립변수로 설정함. 따라서 새뮤얼슨이 자신의 소득-지출모형, 즉 경기순환론을 기초로 경제학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한 결과가 바로 현대경제학(새뮤얼슨의 교과서는 그의 지론에 따라 거시경제학을 먼저 설명하고 미시경제학을 설명).

 

현대경제학의 변모

 

-현대경제학의 변모에도 불구하고 미시경제학은 거의 불변하여 마셜적 전통과 왈라스적 전통이 지속됨.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은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가격을 통해 희소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장메커니즘을 통해 설명함. 먼저 소비자이론에서 개별가계의 선택, 즉 효용최대화에서 개별수요를 도출하고, 생산자이론에서 개별기업의 선택, 즉 생산최대화와 이윤최대화에서 개별공급을 도출함. 나아가 시장이론은 시장균형, 즉 시장수요와 시장공급을 일치시키는 시장가격을 설명함. 시장균형에서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가 최대화되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주장하는 것.

-반면 거시경제학은 논쟁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함. 특히 케인즈주의 경기순환론. 가장 중요한 쟁점은 새뮤얼슨과 프리드먼 사이의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 논쟁. 핵심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유효성의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데 있음. 논쟁과정에서 새뮤얼슨 교과서가 수정되는데, 여기서 거시경제학 내부에서 케인즈주의와 통화주의를 종합한다는 신고전파 종합의 의미가 새로이 출현함(‘포스트케인즈주의 종합’). 이 과정에서 힉스와 모딜리아니의 IS-LM 모형을 수용하고, ‘필립스곡선의 도입과 그 이동을 설명하며, 소득정책의 필요성을 제시함. 현대경제학의 전성기는 통화주의의 논쟁을 통해 변모하는 1960년대라고 할 수 있음.

-1980년대에는 케인즈주의가 결정적으로 쇠퇴. 상황 변화가 새뮤얼슨 교과서에도 반영됨. 가장 중요한 수정은 노드하우스와 공동집필을 시작하며 총수요-총공급모형(AD-AS 모형)을 수용한 것. 더불어 재정적자로 인한 국채누적에도 주목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재정정책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199214판부터 미시경제학을 먼저 설명하고 거시경제학을 나중에 설명하며, 1995년의 15판에서는 결국 재정정책에 대한 통화정책의 우위를 주장하는 새케인즈주의의 입장을 수용함.

-교과서의 설명순서가 역전된 것은 거시경제학의 미시경제학적 기초를 둘러싼 논쟁의 결과. 애로우는 1967년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과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의 비일관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논쟁을 최초로 제기함. 그는 거시경제학에 적합한 미시경제학을 재구성하려고 시도. 반면 프리드먼의 제자인 루커스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비일관성은 거시경제학의 실패이며, 미시경제학에 적합한 거시경제학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함.

-1980년대 프리드먼과 루커스의 입장이 다수파를 형성하며 새고전파(‘new classical’)가 출현. 새고전파의 대표적 이론은 루커스의 균형경기순환론과 프리스콧의 실물경기순환론’. 여기서 실물경기순환론은 실물경제적 충격이 기술진보와 관련되기 때문에 경기순환론과 경제성장론을 결합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함. 경제성장론은 기술진보의 외생성을 가정하는 솔로우의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을 의미.

-새고전파의 등장으로 1990년대 새케인즈주의(‘new Keynesianism’)가 출현함. 새케인즈주의는 신케인즈주의와 새고전파를 종합(‘새케인즈주의 종합’)하여 경기순환론과 경제성장론을 결합하는 새고전파적 모형을 수용. 그러나 새고전파와 달리 시장가격의 신축성을 부정함. 따라서 새케인즈주의는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의 마셜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마셜적 전통은 가격경직성과 수량조정을, 왈라스적 전통은 가격신축성과 가격조정에 각각 주목함).

-새케인즈주의자의 대부분은 MIT 경제학과 출신(피셔, 스티글리츠, 버냉키, 맹큐, 크루그먼). 새뮤얼슨 이후 대표적 교과서를 집필한 것도 모두 새케인즈주의자. 피셔의경제학(1984년 초판)은 립시 교과서처럼 미시경제학을 먼저 서술하고 거시경제학을 나중에 설명하며, 거시경제학 내부에서는 경기순환론을 먼저 설명하고 경제성장론은 나중에 설명. 스티클리츠와 크루그먼의 교과서도 동일. 반면 맹큐와 버냉키는 미시경제학을 먼저 설명하고 거시경제학을 나중에 설명하지만, 경제성장론을 먼저 설명하고 경기순환론을 나중에 설명함.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이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을 매개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맹큐와 버냉키의 설명순서가 논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음.

-현대경제학의 기본적인 정치이념은 자유주의. 새뮤얼슨의 모토는 혼합경제로, 자유기업을 전제하는 국가개입, 즉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주장하는 것. 신케인즈주의와 새케인즈주의의 차이는 통화주의의 비판을 일부 수용하여 재정정책에서 통화정책으로 강조점이 이동된다는 것. 반면 새고전파는 재정정책은 물론이고 통화정책의 유효성도 부정. 새고전파는 보수주의를 급진화하여 일체의 경제정책의 유효성을 부정함.

-한편 마셜이 주장하는 도덕경제학’(moral economy)은 바로 웹 부부의 페이비언주의의 경제학적 기초를 형성함. ,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론이 페이비언주의를 현대화한 전후 사민주의의 경제학적 기초. 한편, 왈라스가 주장하는 노동자자주관리론은 전후 시장사회주의론과 친화성을 가짐.

 

케임브리지 논쟁와 마르스크주의의 부활

 

-현대경제학 외부, 부르주아 경제학 내부의 논쟁으로 케임브리지 논쟁에 주목해볼 수 있음. 1960년대 케임브리지 논쟁의 발단은 1953년 로빈슨이 제기한 현대경제학에 대한 비판. 1960년대 새뮤얼슨의 신케인즈주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은 프리드먼의 통화주의와 로빈슨의 포스트케인즈주의가 대표하는 셈. 비판의 요지는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이 케인즈주의 경기순환론에 부적합하다는 것. 로빈슨은 칼도와 함께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에 대한 대안으로 포스트케인즈주의 경제성장론을 제시함. 나아가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의 비일관성이라는 쟁점을 제기하면서 미시경제학의 거시경제학적 기초에 주목. 로빈슨은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에 대한 대안으로 스라파가 재구성한 고전파 미시경제학을 채택.

-케임브리지 논쟁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나는데, 이는 결국 포스트케인즈주의라는 관점 때문. 로빈슨은 케인즈적 전통의 올바른 계승을 강조하며 적자(嫡子)케인즈주의를 주장. 그러나 케인즈의 오류, 나아가 스라파의 오류를 고려할 때 케임브리지 논쟁은 그 자체로 비생산적. 그럼에도 로빈슨과 새뮤얼슨의 논쟁은 초미의 관심사를 끌었으며, 부르주아 경제학의 한계가 드러나는 계기가 됨. 그 역설적 결과로 영국과 미국에서 청년 경제학자 중심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이 부활함.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은 이론적 논쟁뿐 아니라 1970년대 이윤율의 하락에 따른 자본축적의 둔화로 인한 대불황이라는 경제적 현실의 변화와도 관련됨.

-자본축적론과 경제위기론을 설명할 수 없는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 전체에 대한 관심이 부활하였고,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도 활발한 논쟁이 전개됨. 그 결과 순환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가 구별되기 시작. 순환적 위기는 경기순환의 한 국면인 경기침체를 의미하는 반면 구조적 위기는 자본축적의 한 국면인 대불황을 의미.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은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의 전개와 1989~91년 현실사회주의 붕괴에 따라 일시적 유행에 그침. 부르주아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형성하는 데는 실패함.

-다만 몇 가지 개인적 성과가 존재. 영국에서는 1970년대 결성된 영국의 사회주의경제학대회(CSE), 그 다음해부터 발행된 기관지사회주의경제학자대회내부회보(BCSE)에 주목할 수 있음. 이 조직은 마르크스주의자와 포스트케인즈주의자의 이론적 동맹을 토대로 하는 것인데, 1976년 포스트케인즈주의자가 이탈. 1977년부터는 기관지 제호를 자본과 계급으로 변경. 그런데 그 직후 마르크스주의자 내부에서도 논쟁이 전개됨. 사회학정치학 연구자가 경제학 연구자가 학술적이라고 비판하며 연구자와 활동가의 결합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경제학자 대부분이 이탈함.

-사회주의경제학자대회내부회보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가 파인. 파인의 주저는 1979년 해리스와 공동으로 집필한 자본을 다시 읽자. 파인과 해리스는 스라파적 전통을 신리카도주의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그로스만적 전통을 근본주의라고 비판하면서자본으로 돌아가자는 일종의 고전주의를 주장함. 파인은 현실정치에도 적극 참여함. 영국공산당원이었던 그는 1973~79년 포스트케인즈주의자와 함께 노동당 좌파에 개입하여 대안경제전략’(AES)을 수립하는 데 기여함. 대안경제전략의 특징은 유럽통합에 반대하면서 민족경제론을 주장하는 시대착오. 파인은 대안경제전략의 근거로 국가독점자본주의 단계론과 자본 국제화론,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국제화론을 제시함. 1980년대 이후 보수당의 새처가 집권하면서 대안경제전략은 소멸하는데, 결국 신자유주의적 금융세계화를 비판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

-사회주의경제학자대회에서 이탈한 포스트케인즈주의자들은 1976년 케임브리지경제학회를 창립하고 1977케임브리지경제학잡지를 창간함. 그러나 로빈슨과 스라파의 내분으로 이미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가 쇠퇴하는 중이었음. 로빈슨은 케인즈처럼 단기적 현상인 경기순환을 강조한 반면 스라파는 고전파적 전통을 따라 장기적 현상인 자본축적 또는 경제성장을 강조함. 단기냐 장기냐라는 쟁점이 화해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포스트케인즈주의는 결정적으로 쇠퇴. 한편, 로빈슨과 칼도 사이의 내분도 전개됨. 브레튼우즈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여전히 재정정책의 유효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로빈슨의 입장과 그렇지 않다는 칼도의 입장이 충돌함.

-미국에서는 1968년 급진주의경제학회(URPE)가 결성, 그 다음 해급진주의경제학잡지(RRPE)가 창간됨. 그 계기는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학생운동이 전개되면서 하버드대학 경제학과 내부에서 전개된 경제학교육에 대한 논쟁. 그러나 미국은 영국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으로 레드 콤플렉스로 급진주의(radicalism)라는 애매모호한 용어를 사용하였으며, 새뮤얼슨의 이론적 헤게모니가 거의 절대적이었음. 좌파가 늘어나면서 새뮤얼슨은 1973년의 9판부터 마르크스주의 비판을 추가함.

-이런 상황에서 영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포스트케인즈주의자와 급진주의자 사이 우호적 관계가 지속됨. 이는 스위지 이래 하나의 전통으로, 스위지는 제도권 외부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케인즈주의의 결합이라는 방식으로만 주장을 개진할 수 있었기 때문. 케인즈주의화된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것이 스위지의 독점자본주의론. 급진주의경제학자는 이 이론을 사회적 축적구조론으로 발전시킴. 프랑스의 68세대의 조절이론도 마찬가지. 모두 스위지처럼 가치법칙과 이윤율 하락의 법칙을 부정하는데, 다만 스위지나 조절이론가와 달리 사회적 축적구조론자는 과소소비설이 아니라 이윤압박설을 채택함.

-미국의 폴리와 프랑스의 뒤메닐은 100년에 걸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논쟁, 특히 가치법칙과 이윤율 하락의 법칙과 관련된 논쟁을 결정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함. 폴리는 1986자본의 이해: 마르크스의 경제이론, 2006애덤의 오류: 경제신학 입문을 출판. 뒤메닐과 폴리는 모두 알튀세르의 영향을 받았는데, 1970년대 마르크스주의 부활에는 알튀세르의 영향력이 결정적이었음. 두 사람은 2008년에 출판된뉴팰그레이브 경제학사전재판에 마르크스주의를 개관하는자본주의적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마르크스의 전형 문제라는 논문 두 편을 공동으로 기고.

-이와 같은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은 결국 실패. 이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제도적 장벽보다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이론적 미숙함이 크게 작용함. 몇몇 개인이 교수가 되거나 독자적 학파를 형성하는 게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마르크스 자신이 제도권 외부의 개인연구자였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음. 한편, 마르스크주의자가 실력이 없는 것은 배울 만한 선배가 없다는 역사적 이유에서 기인함. 1960년대 이전까지 영국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한 돕과 미국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한 스위지는 마르크스의 방법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음. 이로 인해자본의 개념에 대해 오해가 발생한 것. 결국 돕은 스라파주의로, 스위지는 케인즈주의로 전향함.

-오히려 소련의 마르크스주의자에게 배울 것이 훨씬 더 많은데, 대표적으로 소련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킨 짜골로프에 주목할 수 있음. 짜골로프는 청년기부터 마르크스의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짐. 스탈린 사망 이후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이 전개되면서 짜골로프는 1957년 모스크바대학 경제학부 학부장에 발탁됨. 그 이후 출판한경제학 교과서은 방법이라는 측면에서자본과 현대자본주의의 관계를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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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은 소비자선택생산자선택시장균형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됨. 그러나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에 화폐라는 개념이 없으므로, 시장가격에 주목하면서도 설명하지는 못함. 그럼에도 신고전파 미시경제학이 유지되는 이유는 과학적 이론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이데올로기로 기능하기 때문. 시장가격이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시장의 효율성이 그 이데올로기.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은 국민회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새뮤얼슨이 변형한 소득-지출모형을 통해 거시경제적 현상을 설명 가능. 먼저 케인즈가 주장하는 저축의 역설을 설명할 수 있음. 투자의 감소로 발생하는 경기침체에서 저축의 증가로 소비까지 감소한다면 오히려 경기침체가 심화된다는 것. 그러나 자유기업의 원칙에 따라 투자를 강제할 수 없으므로 재정정책을 통해 경기회복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 더불어 소득-지출모형을 확장하려는 시도인 힉스와 모딜리아니의 IS-LM모형, IS-LM모형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IS-MP모형에 대해 설명.

-신고전파 경제성장론의 자본축적론의 기본방정식은 마르크스가자본에서 이미 예상한 것을 현대경제학이 표절한 것. 그러나 현대경제학은 중립적 기술진보의 관점을 채택하는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편향적 기술진보의 관점을 채택함. 따라서 균형에 대한 해석도 지속상태와 정상상태로 달라짐. 중립적 기술진보론과 지속상태론이 신고전파 경제성장론, 나아가 현대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결함. 편향적 기술진보론과 정상상태론을 채택해야만 순환적 위기와 구조적 위기를 구별할 수 있으며, 2007~09년 금융위기의 역사적 성격을 인식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