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철학
1장: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인가 마르크스의 철학인가?
작성: 18.06.15
-역설적이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인 반면, 철학에서 마르크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선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이 의미했던 바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상당히 다른 두 가지 관념, ①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역할이라는 관념에 기초한 사회주의 운동의 ‘세계관’이라는 관념과 ② 마르크스의 것으로 간주되는 그 체계라는 관념이다. 하지만 이 두 관념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아니며, 마르크스 사후 이 두 가지 관념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표현들이 만들어졌다(‘변증법적 유물론’).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이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의미, 원리, 보편적 유효범위에 관한 더욱 일반적․추상적 성찰로서 사후적 방식으로 출현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마르크스의 텍스트들과 ‘마르크스주의적’ 후예들 사이의 간극을 강조하고, 마르크스의 철학의 존재가 그 뒤의 마르크스주의적 철학의 존재 자체를 함의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 거대한 주기의 종말을 특징지었던 여러 사건들[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통해 이 논쟁에 대한 논의 자체를 가로막았던 특정한 이해관계들은 해소되었으며,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적 철학도, 독트린도, 체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환상과 협잡에서 자유로워져 새로운 이론적 소우주를 획득할 수 있다.
철학과 비철학
-새로운 난점은 마르크스의 이론적 사유는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철학에 대한 대안 즉 비철학, 게다가 반철학으로 제시되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그동안의 전통적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개별적 기획들이었으며, 이는 최상의 경우 현재 상태를 유지할 뿐이며 최악의 경우 이 세계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변형한다.
-마르크스 자신 또한 철학적 언표들을 자신의 역사-사회적 분석들과 정치적 행동을 위한 명제들과 교착시켰으나, 마르크스는 어떠한 일관된 전체를 갖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이론적 활동은 독트린들의 다원성이라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는 철학에 미달하는 것과 철학을 초과하는 것 사이의 영원한 진동으로 이끌었다. 철학에 미달하는 것은 스피노자와 알튀세르라면 ‘전제 없는 결론’이라고 불렀을 명제들에 대한 언표들이다(“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조건 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조건 하에서 만든다.”). 반대로 철학을 초과하는 것으로 철학은 자율적 활동이 아니며 사회적 갈등의 장, 특히 계급투쟁의 장 내에서 이 철학이 점하는 위치에 의해 규정되는 활동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담론을 지시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철학이 지니는 이러한 모순들, 진동들은 철학적 활동의 본질 자체, 즉 그 내용, 스타일, 방법 또는 그 지적·정치적 기능들을 질문하게 만든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 이후에 철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이런 반철학, 비철학은 마르크스의 사유가 겨냥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효과를 생산했다. 이제 ‘영원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으며, 영원히 열려진 질문을 자신의 중심에서 촉발하며, 철학 내에서는 전환점들과 비가역적 임계점들만이 존재한다. 이제야 우리는 철학자로서의 마르크스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마르크스의 철학들을 그의 저술들의 열려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저작들에 항상 나타나는 간극은 독창적인 변증법을 소묘하도록 강제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모든 저작은 철학적 작업이 배어 있는 저작인 동시에 철학적 전통이 철학을 고립시키고 한정 지었던 방식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방식을 활용한다.
절단과 단절들
-마르크스는 정세 속에서 작업하면서 “개념에 대한 끈질긴 탐구”를 놓치지 않았지만, 이런 태도는 결론의 안정성과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여러 사유의 작업장들을 뒤로 하고 새로이 앞으로 나아가는, 영원한 재출발의 철학자일 수밖에 없었다.
-알튀세르가 설정한 마르크스의 1845년의 절단은 ‘사회적 관계’가 등장했던 시기로, 이전의 이론적 인간주의와 점점 더 거리를 둔다. 이 절단은 직접적인 정치적 경험들(독일과 프랑스에서 프롤레타리아와의 만남, 사회 투쟁의 흐름으로의 적극적 진입)로 인해 발생하지만, 그 내용은 본질적으로 마르크스가 수행했던 지적 작업에 속한다. 반면, 최소한 두 번 있었던 단절들은 매번 이론 자체의 재정초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만 지적 파산을 모면할 수 있었다.
-1848년 이후. 첫 번째 단절은 1848년 혁명의 실패와 일치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임박한 일반적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활용해 프롤레타리아가 계급 자체의 폐지와 공산주의로의 이행으로 이끌어갈 근본적·급진적 민주주의를 확립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는 사실은 1847년 엥겔스와 함께 작성한 『공산주의자 선언』에 드러난다. 하지만 봉기의 실패라는 경험은 마르크스가 프롤레타리아와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적 임무에 대한 그의 관념을 동요하게 만든다(3장). 이는 마르크스에게 이론적 변화를 일으켜 계급사회에서 계급 없는 사회로의 임박한 이행이라는 관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조응하는 ‘영속혁명’이라는 정치적 프로그램이라는 관념을 포기하게 만든다. 또한, 마르크스에게 겨우 막 정의되고 활용되기 시작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지속적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또한 이는 마르크스로 하여금 정치 정세와 사회 변화의 장기적 경향들이 경제적으로 결정된다는 연구 프로그램,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기획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자본주의의 비밀스러운 메커니즘을 폭로하고 그 필연적 붕괴를 논증하여 자본주의에 복수하기 위한 마르크스의 악착 같은 노고는 1867년 『자본』1권의 출간으로 결실을 맺는다.
-1871년 이후. 두 번째 위기는 1870년 독불전쟁과 그 뒤를 이은 파리 코뮌이다. 이는 ‘역사의 나쁜 방향’, 즉 예상치 못한 역사의 전개와 그 퇴행, 역사가 끔찍한 인간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경고를 알린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다른 이해관계들과 다른 정념들을 위해 계급투쟁을 무력화한다. 프랑스에서 폭발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자본주의적 축적 그 자체에서 생산되는 위기의 ‘논리적’ 도식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며,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가 비대칭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사태를 직시한다. 그는 짧은 파리 코뮌의 경험에서 프롤레타리아가 이룩한 최초의 ‘노동자계급의 통치’의 발명을 읽어낸다. 그는 ‘이행 국면’ 내에서 국가장치를 해체하는 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새로운 독트린을 제시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제1인터내셔널을 해체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회 변화에 관한 이론을 정정하는 작업에 착수하기 위해 『자본』집필을 중단하고 남은 인생 10년을 바친다(그래서 『자본』초고는 계급에 대한 장 중간에서 멈춰 있다). 그 후 엥겔스가 역사유물론, 변증법, 사회주의의 전략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떠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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