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교육학, 비고츠키

 

2: 고등정신기능의 형성과 발달

 

이진호

 

1: 고등정신기능이란?

 

1. 보편적 정신기능으로서 고등정신기능

비고츠키는 동물과 구분되는 인간의 본질을 정신기능에서 찾았으며,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 정신기능을 고등정신기능이라고 호칭하였다. 여기서 고등은 동물에 비해 고등하다는 것이지 무언가 신비하고 초월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2.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

고등정신기능이 인간만이 가지는 보편적 정신기능이라면, 기초정신기능은 동물의 한 으로서 인간이 자연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기능이다. 기초정신기능이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라면, 고등정신기능은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고등정신기능(능동적, 의지적): 범주적 지각,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개념적 사고

기초정신기능(수동적, 반응적): 반응적 지각, 반응적 주의, 자연적 기억, 실행적 사고

 

2절 고등정신기능의 발생

 

고등정신기능의 의의와 특징

인간보다 기초기능이 뛰어난 동물들도 많이 있지만, 도구와 기호를 활용하고 상상적 창조력을 발휘하는 고등정신기능을 발달시킴으로써 모든 동물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인간 존재가 가능해졌다.

고등정신기능은 기초정신기능과는 달리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인간이 활동을 할 때 여러 고등정신기능이 통합적으로 작용한다. 한편, 고등정신기능은 반드시 기초기능을 토대로 작동할 수 있다.

 

2. 고등정신기능의 발생: 계통발생과 개체발생

비고츠키는 생물이 진화하면서 고등정신기능을 갖춘 인간이 출현하게 된 과정을 계통발생으로, 갓난아기가 성인으로 성장하며 고등정신기능을 갖추게 되는 과정을 개체발생으로 구분한다. , 계통발생에서 생물학적 발달 노선문화적 발달 노선을 구분한다. 따라서 기초정신기능은 생물학적 발달 노선 속에서 형성해온 기능이며, 고등정신기능은 역사적-문화적 발달 노선의 결과이다. 고등정신기능 발달에서 생물학적 진화는 토대가 되며 문화적 발달은 원천이 된다.

 

생물학적 발달 노선(진화): 생물적 유형의 변화

문화적 발달 노선(역사, 사회발생): 생물적 유형의 변화 없이 일어남

 

인간은 집단적 차원에서 계통발생을 통해 고등정신기능을 발달시켰지만, 그것이 각 개인들의 고등정신기능으로 저절로 발현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자라면서 고등정신기능을 발달시키는 개체발생은 또 다른 문제이다.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의 두 발달 노선이 한 개인에게 융합되어 나타난다는 특징을 지닌다. , 생물학적 성숙과 문화적 발달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계통발생의 순서가 그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3: 도구와 기호의 문제

 

도구와 기호

비고츠키는 문화적 발달에서 핵심 연결 고리를 도구와 기호에서 찾는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직접 자연에 작용시키는 동물과 달리 도구라는 물리적 매개를 활용하는 한편, 심리적 작업을 수행할 때 그 촉진물로 기호를 발명하여 사용하였다. 이처럼 도구와 기호를 통한 매개적 활동으로 인간은 문화적 발달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2. 흔적 기능: 기호의 역사적 발생

비고츠키는 기호의 출현과정을 규명하기 위해 흔적 기능을 탐구한다. 그는 기존의 심리학 연구가 자극-반응원칙을 토대로 삼아 모든 고등정신기능을 기초기능으로 환원하여 설명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고등정신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기호를 통한 매개적 심리과정을 갖는다고 주장하며, 고등정신기능이 사회적으로 발생한 흔적을 담고 있는 흔적 기능을 탐구한다.

흔적 기능은 과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기능들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제비뽑기(의사결정)’, ‘매듭 묶기(문화적 기억)’, ‘손가락으로 수 세기(문화적 산술)’의 세 가지 흔적 기능을 예로 든다. 이와 같은 흔적 기능에서 인공적인 보조 자극의 도입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자극과 반응을 매개하는 보조 자극을 도입하여 자기-자극을 행했다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이와 같은 인간의 모든 보조 자극을 기호라고 불렀으며, 기호의 도입으로 인간의 고등정신기능 발달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3. 기호의 의의

기호는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발달의 산물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기호는 말이다. 인간은 말을 통해 자극에 대한 즉각적 반응이 아닌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인간은 도구와 기호를 활용하여 동물을 뛰어넘고 기초정신기능을 초월할 수 있었다. , 기호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자유의지의 토대를 닦았다.

 

4: 고등정신기능의 총체성

 

고등정신기능의 총체성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들이 하나의 통합된 심리적 체계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며 그 요인으로 발생적 연결(발생), 기호의 매개(구조), 능동성의 결합(기능)의 세 가지를 든다. , 고등정신기능의 총체성에는 정서/사고/의지의 총체성도 포함된다. 비고츠키는 인간 의식은 통합된 전체이며, 이를 지적 측면과 감정적, 의지적 측면으로 분리하는 것은 전통적 심리학의 근본적 결함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고를 일으키는 원동력을 정서와 의지라고 보았다. 기호를 매개로 모든 고등정신기능들이 연결되고, 지성/정서/의지가 결합된 총체적 인간 의식이 바로 인격이다.

 

2. 시사점

이상의 내용을 통해 우리나라 교육을 고찰해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지적, 정서적 측면의 양극단을 병적으로 왔다 갔다 하며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대학 입시 때문에 지적 측면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다가도,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면 인성교육 강화를 부르짖는 식이다. 비고츠키의 주장대로 고등정신기능의 지적 측면과 정서적, 의지적 측면이 통합되어 있다면, 한쪽만 강조하는 교육은 고등정신기능을 온전히 발달시킬 수 없다. 다양한 교육 활동을 통해 고등정신기능 발달을 도모해나갈 필요가 있다.

 

5: 창의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창의성에 대한 오해

교육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보는 천박한 교육관 속에서 창의성에 대한 다양한 오해가 발생하였다. 먼저, 아이가 어릴수록 창의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오해가 있다. 고등정신기능인 상상력은 발달하는 것이므로 이는 오해이다. 어린이의 상상은 성인의 개념적 사고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구체적이고 돌발적 특성이 있어 신선하게 느껴질 뿐이다. 둘째로, 비현실적이고 허무맹랑한 생각이 곧 상상력이라는 오해가 있다. 그러나 상상’, ‘공상’, ‘망상은 다른 것이다. 상상은 매우 현실적일 수도 있다. 셋째로, 창의성을 키우는 특별한교육이 있으리란 오해가 있다. 그러나 창의성은 집중적 훈련으로 키울 수 있는 고립된 기능이 아니다. 다양하고 기초적인 기능들을 충분하고 체계적으로 형성해나갈 때 성장시켜 나갈 수 있다.

 

2. 상상과 창조(창의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비고츠키는 상상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심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것이고, 창조란 상상을 현실 속에서 다시 구체화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상상은 복합적인 기능 체계이며, 다른 모든 고등정신기능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욕구에 뿌리를 두고 사회적으로 발달한다. 그는 인간이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능력은 말을 통해 생기기에 상상의 발달과 말 발달은 매우 밀접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상은 말이 낳은 심리적 결과만은 아니며, 그 심리적 근원은 감정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상상과 생각 사이의 차이는 상대적이며 결코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다. 많은 예에서 드러나듯이 예술적 창조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발견에서 현실적 생각과 상상은 통합체로 작용한다.

하지만 현실적 생각과 상상은 그 지향이 다르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현실적 생각은 현실을 지향하며, 상상은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의식의 작용이다. 현실적 생각은 현실에 대한 직접적 인식에 다가가지만, 본질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현상이 아닌 상상의 작용이 필요하다.

이처럼 비고츠키는 현실적 생각과 상상을 구분하면서도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았다.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려면 상상의 역할이 필요하며, 상상은 개념적 생각 발달에 필수적인 보편적 기능이다. 따라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별도의 교육은 타당하지 않으며, 고등정신기능을 키우는 보편적 교육 속에 상상력 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다.  

+ Recent posts